비비 가수 옥문아 남연예인 디엠 할머니 시인 아버지 작사가 밤양갱 비하인드
비비 가수 옥문아 남연예인 디엠 할머니 시인 아버지 작사가 밤양갱 비하인드
- admin
- 4 min read
비비의 ‘밤양갱’을 처음 듣던 날
지난 2024년 2월, 가요계에 ‘밤양갱’이라는 곡이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게 뭔 떡 베이스냐” 싶을 정도로 낯설었을 겁니다. 비비가 부른 〈밤양갱〉은 발렌타인데이 직전에 발매됐는데, 달콤한 라이브 편곡과 중독성 강한 멜로디 덕분에 순식간에 ‘겨울 사랑 노래’로 자리 잡았어요. 비비 본인도 인터뷰에서 “처음에 이 곡을 들었을 때, 이게 그냥 묻혀서 있을 곡이 아니라고 느꼈다”고 말할 정도로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해요.
이 곡은 사실 비비의 곡이 아니었어요. 장기하가 작사·작곡·편곡을 맡은 곡으로, 처음엔 다른 아티스트를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티스트가 이 곡을 부르지 않겠다고 했고, 몇 년 뒤에 카더가든이 비비에게 “한 번 들어볼래?”라고 틀어주면서 비비의 길로 들어오게 되죠. 비비는 “들었는데, 이건 분명 내 패(스타일)다, 바로 내 거라고 느꼈다”는 말을 반복해서 했는데, 그 날 술자리에서 장기하에게 “이건 제 거예요, 술 먹고 농담이 아닙니다”라고까지 말했다고 해요.
남연예인 DM 비하인드, 설렘과 당황의 순간
2026년 5월,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비비가 출연하면서 또 한 번 세간의 관심이 쏠린 부분이 있었어요. 바로 남자 연예인에게 DM으로 대시를 받은 일화였어요. 비비는 “딱 한 번 DM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하며, 그때의 상황을 비교적 가볍게 풀어갔어요. 그 남자 연예인은 비공개 계정을 사용해 비비에게 DM을 보냈다고 하는데, 예능에서 이런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것 자체가 꽤 드문 편이라 MC들도 놀라운 표정을 지었죠.
사실 비비는 주변에서 “여자 연예인이면 많이도 받을 거 아니에요?”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그동안 연애 관련 질문이 많았던 것에 비해서 “이건 그냥 한 번뿐이었다”고 선을 긋는 식으로 말했어요. 더 재미난 건, 그 이후 같은 예능 현장에서 그 남자 연예인과 직접 마주쳤다는 이야기였어요. 서로 눈만 마주쳤는데도, 왠지 “그때 그 DM은 그때로 끝”인 느낌이 났다고 말하며 웃어 보였어요.
할머니와 ‘나쁜X’, 그리고 ‘밤양갱’ 이야기
비아냥과 파워풀한 이미지로 대표되는 비비지만, 그녀의 가족 이야기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합니다.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비비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을 많이 보냈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할머니 입장에서는 비비의 첫 히트곡인 〈나쁜X〉 제목 때문에 좀 곤란했다고 해요. 비비는 “할머니는 ‘나쁜X’라는 제목 때문에 자랑도 못 하셨다고 했다”는 말을 했고, 그 반전에 웃음이 나왔어요.
그런 와중에 〈밤양갱〉이 나왔을 때 상황이 바뀌었어요. 달콤하고 유쾌한 제목 덕분에 할머니도 “이건 자랑할 만하다” 싶었는지, 효도의 대상으로 바뀌었다고 해요. 비비는 “용돈을 보내주면 할머니가 그걸로 저를 너무 좋아하는 음식을 사주신다”고 말하면서, 가족을 통해 ‘밤양갱’이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됐다고 했어요.
시인 할머니와 창작 DNA의 흐름
놀라운 건 비비의 할머니가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사실이 더해졌다는 점이에요.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비비는 “할머니가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 집에 이런 창작 DNA가 흐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어요. 가수가 할머니까지 시인이면, 가족 내에서 어떤 감성과 표현이 자연스럽게 교류됐는지가 상상이 됩니다.
이런 가족 배경은 비비의 노래 스타일과도 연결됩니다. 〈나쁜X〉처럼 강한 톤의 노래에서부터 〈밤양갱〉처럼 달콤하고 유머 감각이 넘치는 곡에 이르기까지, 가사의 표현력은 분명히 한 사람의 언어 감각에서 비롯된 부분이 큽니다. 비비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말과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는 말도 했어요.
아버지 작사가, 가족 속의 또 다른 음악성
비비의 가족 이야기는 할머니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밤양갱〉의 가사를 쓴 장기하도 있지만, 비비의 아버지 역시 음악과 글을 다루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가 함께 언급되곤 해요. 다만, 공개된 자료에서는 아버지가 직접 작사가로 활동했는지, 아니면 내레이션이나 칼럼 쪽으로 활동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비비가 가족 중에서 “가사와 표현에 민감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한 것을 보면, 아버지도 글을 중요하게 여기는 쪽이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이러한 가족적 배경은 비비가 〈밤양갱〉 같은 곡을 받았을 때, 가사 한 줄 한 줄을 더 깊이 읽게 만든 계기가 됐을 수도 있습니다. 장기하가 쓴 가사 속에서 “달디단 밤양갱”이라는 표현이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사랑과 그리움, 동시에 위로가 섞인 감정의 상징으로 느껴졌다는 점이 비비의 해석에 많이 담겼어요.
‘밤양갱’ 가사, 야한 뜻이 아니라 애정의 표현
〈밤양갱〉이 이렇게 큰 히트를 쳤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야한 노래 아니냐”는 오해도 함께 따라다녔어요. 비비는 여러 방송에서 “숨겨진 뜻이 있는 야한 곡이라는 말이 많았는데, 정말 아니다”라고 부정했어요. 그녀는 “가사 토씨 하나 바꾸지 않았다”며, 장기하가 처음부터 끝까지 쓴 그대로를 받아들었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비비는 “내가 부르니까 사람들이 더 이상한 뜻을 읽으려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곡의 분위기를 “달콤하고 유쾌한 설렘”으로 보고 있다는 걸 분명히 했어요. 곡 안에서 “달디단 밤양갱”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아주 단순하고도 강력한 표현처럼 느껴지고, 비비의 톤과 뮤직비디오의 연출이 그 감정을 더 귀엽고 따뜻하게 풀어준 느낌이에요.
한 사람의 ‘밤양갱’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비비에게 〈밤양갱〉은 단순한 노래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 번 거절된 곡이었고, 누군가가 “이게 아니야”라고 내려놓은 노래였는데, 비비는 그걸 붙잡아서 “이건 내 패다”라고 선언했어요. 그 선택 덕분에 코첼라 무대에서 두 차례 공연을 펼치며 글로벌 영향력을 입증한 비비가 되었고, 한국 여자 솔로 가수 최초로 이런 기록을 세우게 됐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한꺼번에 들으면, 비비는 단순히 파워풀한 이미지만으로 성공한 아티스트가 아니라, 가족의 감성과 글에 대한 감각, 그리고 스스로의 스타일을 확신하는 태도가 잘 어우러진 예술가라고 느껴져요. 2026년 지금, 비비가 남연예인에게 DM을 받은 일화를 말하며 웃고, 할머니가 시인으로 등단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는 모습을 보면, 그녀의 삶과 음악이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